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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2018 평창동계올림픽

평창일기 Day 3 : 축제의 시작, 그 현장에서 (2018년 2월 9일)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부족한 준비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세계인의 축제답게 수많은 외국인이 평창을 다녀갔고 주요 외신도 이번 대회를 비중있게 다뤘다. 자원봉사자가 아닌 바깥에서 지켜보는 시각으로 오늘 개막식의 현장을 다녀왔다.

일정은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작됐다. 일반 관람객의 입장에서 접근하기 위해 시외버스를 이용해 올림픽플라자로 향했다. 도착지는 올림픽플라자 바로 옆인 횡계시외버스공용정류장. 4시 55분에 출발한 버스는 장평과 진부를 지나 횡계로 향했다. 6시 30분 쯤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한 조직위원회가 선수단과 미디어에게 우선을 주기 위해 교통을 통제한 것. 일반인은 횡계 근처의 주차장까지만 접근할 수 있고 그곳에서 셔틀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평창의 인프라는 이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했다. 주차장 1개로는 수많은 차량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대관령 IC를 지나자마자 엄청나게 긴 차량 행렬이 나타났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시각은 6시 20분. 그 전까지 빠르게 달리던 차량은 일순간에 정체됐다. 편도 2차선의 도로는 수천 대의 차량에겐 너무 좁았다. 1분 동안 50m 전진하기도 힘들었다. 기사님의 한탄이 시작됐다. "진부 쪽에도 주차장을 만들어서 차량을 분산해야 하는데 답답하다. 뭐 하는 건 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리고 "이래가지고 못 간다. 저 사람들이 8시까지 스타디움에 들어갈 수 있을까"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조금씩 기어간 버스는 마침내 52분이 되어서야 교차로를 빠져나오며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국제방송센터로 가야 하는 근무자는 중간에 내려서 걸어가기까지 했다. 이번 올림픽의 교통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다.



현장에 도착하자 분위기는 또 달라졌다. 올림픽 플라자 인근은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인구 4천 명의 작은 마을에 수만 명이 모이자 모든 거리가 가득 찼다. 매표소와 출입구, 그리고 수많은 불빛으로 꾸민 장식물까지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대화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느 스포츠 경기와 마찬가지로 암표상도 존재했다. 매표소 앞을 지나갈 때마다 반값에 판다면서 슬며시 다가왔다. 평소에 흔히 보던 아저씨들은 물론 외국인 청년까지 암표 판매에 열을 올렸다. 그 청년은 1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Ticket, ticket"을 외쳤다. 경기장 바깥에서부터 야구의 한국시리즈나 축구 국가대표 경기에서 느낄 수 없는 열기가 전해졌다.


AFP나 로이터 등 외신 기자들도 거리를 돌아다니며 평창의 분위기를 담았다. 길거리에서 악기를 부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것은 기본, 군밤이나 번데기 같은 한국 음식을 촬영하고 올림픽 스타디움을 배경으로 리포트를 제작했다. 4시간 동안 수많은 기자를 보았는데, 국내 기자와 다른 모습이 보였다. 국내 기자는 주로 불꽃놀이나 스타디움 안의 장면 등 조직위원회가 준비한 연출에 렌즈를 향했다. 그러나 외신 기자는 대한민국의 문화를 담는 데 중점을 뒀다. 올림픽만 표현하기보다 개최지의 분위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였다.

생각보다 가게나 식당은 올림픽 수혜를 많이 받지 못했다. 로터리를 중심으로 사거리가 펼쳐져있는데 생각만큼 사람이 많지 않았고 술집이나 바에만 개막식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흔히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소소한 가게들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 없다는 듯 주인 혼자 자리를 지키거나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입장 티켓이 없는 나는 플라자 주변을 빙빙 돌았다. 외곽 쪽으로 5분 정도 걸으니 한편에서 평창눈꽃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번 올림픽과 함께 열었는데 아직 사람은 많지 않고 커플 몇 쌍이 얼음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눈밭을 거닐었다. 한 쪽에는 푸드 트럭이 줄지어 있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에는 이미 다양한 겨울 축제가 있지만, 외국인들에게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빈틈 없었던 거리는 개막식 시간이 다가오자 점점 한산해졌다. 나처럼 플라자로 들어가지 못하는 여행객이나 집앞으로 구경온 지역 주민들이 꽤 많았지만, 대부분은 줄 지어서 플라자로, 경기장으로 입장했다. 조용해지는 것도 잠시 사거리 로터리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으로 달려갔다. 로터리 사이로 두 단체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한 단체는 ‘Against War! For Peace! Yankee Go Home!’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전쟁을 반대하는 좌파 단체였다. 다른 단체는 ‘We are against Pyeongyang Olympic’이라는 현수막과 함께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다. 북한의 올림픽 개입을 반대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우파 단체였다. 수많은 경찰 인력이 동원됐고 주변에는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로 붐볐다. 물론 외신 기자들도 관심있게 지켜보며 기록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의 시위는 불꽃놀이가 한창이던 10시 무렵까지 이어졌다.

개막식이 시작되고 선수단 입장도 거의 다 이뤄졌을 무렵 외신 기자들이 한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곧바로 따라갔는데 그들은 올림픽의 하이라이트인 성화 봉송과 불꽃놀이를 담기 위해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스타디움이 보이는 저 멀리 언덕으로 올라갔는데 이미 자리를 잡은 국내 기자도 있었고 분주히 카메라를 설치하는 외신 기자도 있었다. 눈치 빠른 시민들도 이곳이 명당이라는 걸 알고 함께 기다렸다. 불꽃이 터질 시간이 임박하자 안전을 위해 인도가 통제됐다. 그리고 불꽃쇼가 펼쳐졌다. 행사가 끝난 뒤 기자들은 바쁘게 리포트 영상을 촬영했다. 한 기자는 스페인어로 리포팅하길래 끝나고 난 뒤 인사를 건네려 했으나 분주히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에 다음 기회로 미뤘다. 그러나 현장에서 기자들의 모습을 보고 한 가지를 확실히 느꼈다. 반드시 기자가 되어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이야기를 담아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