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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2018 평창동계올림픽

평창일기 Day 1 : 아직은 한산한 올림픽플라자 (2018년 2월 7일)

1년 반 전부터 기대를 품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를 신청하면서 '나도 될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서 시작됐지만, 참여가 확정되고 활동 분야도 내가 바라는 쪽으로 배정되면서 2018년의 2월만을 기다려왔다. 평창에 발을 딛는 무브인 날짜는 2월 7일. 그리고 오늘, 30년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함께하게 됐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평창과 강릉, 두 군데에서 경기를 치른다. 설상 종목은 평창, 빙상 종목은 강릉에서 열리는데 나는 평창 쪽 베뉴에서 근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기장과 가까운 곳은 평창역이 아니라 진부역이었다. 올림픽에 참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부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출발은 서울역이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11시 55분 열차를 탔다. 통로 쪽 자리를 받은 나는 자리를 찾다 옆자리가 이미 채워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60 혹은 70대가 되보이시는 할아버지.


'그래도 혼자 가는 게 편한데...'


할아버지는 내게 먼저 어디까지 가는 지 물었다. 공교롭게 할아버지도 나도 진부역까지 가는 일정. 할아버지께선 오대산에 올라간다고 말씀하셨다. 산불 위험이 있어 정상까지 가지는 못한다 하시지만 차림새를 보니 한두 번 산을 오르신 건 아닌 듯 해보였다. 열차는 ktx에 걸맞지 않게 서울에선 천천히 다니더니 어느새 도심을 벗어나자 신나게 달렸다. 강원도의 풍경을 보다 슬슬 지루해질 쯤 진부역에 도착했다는 안내가 나왔다. 도착 시각 1시 34분. 출발한 지 2시간도 되지 않아 강원도를 마주했다. 할아버지께선 어서 빨리 산에 가고 싶어선지 재빠르게 자리를 나섰다. 멀게만 느껴지던 강원도가 이제는 가까워졌다는 걸 체감했다. 사실 평창동계올림픽이라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경강선이지만 어떤 사람에겐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도 싶었다.


역을 나서자마자 이번 대회의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가 사람들을 맞았다. 자원봉사하러 온 학생과 취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동남아에서 여행 온 가족까지 두 캐릭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두 캐릭터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곳이지만, 그 가족이 단지 평창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게 사진 찍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줄은 은근히 길었지만 두 번째 버스만에 탑승했다. 배차 간격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다만 버스가 도착해도 수많은 캐리어를 싣고 출발해야 한다는 점과 추운 날씨가 길게만 느껴지게 만들었다. 진부역에서 평창에 위치한 UAC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UAC까지 가기 전 메달 플라자 근처의 횡계터미널을 경유하는데, 한 광장에서 풍물놀이가 펼쳐졌다. 20여명의 사람들이 옷을 갖춰입은 채로 한국의 멋을 표현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사이사이에 껴서 함께 공연했는데 아쉬운 점은 주민 몇 명과 해외에서 온 촬영기자 1명 뿐이 관객의 전부였다는 점이다. 조금만 더 벗어나니 다른 지역은 올림픽이 아직 한참 남았다는 듯 조용했고, 보이는 사람은 자원봉사자와 주민들 밖에 없었다.


40여분 동안 굽이굽이 도로를 지나니 국제방송센터와 UAC가 위치한 곳에 다다랐다. 이쪽은 그래도 올림픽이 다가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많은 국내외 기자들과 카메라맨이 거리에서 보였고 수많은 버스와 경찰까지 대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볼일을 마치고 나는 UAC에서 올림픽 플라자로 가야 했는데, 버스를 타는데 문제가 생겼다. 허허벌판에 새로 부지를 만들고 셔틀 버스를 신설하다보니 안내가 많이 미흡했는데, 정류장의 위치를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고 표지판도 없어 초행길에는 길 찾는 데 어려움이 생길 것으로 보였다. 다양한 셔틀 노선을 제공한 점은 좋았지만, 안내가 부족하고 어플도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다보니 몇몇 자원봉사자 마저도 지나가는 버스마다 물어보기 일쑤였다. 정류장에 붙혀진 안내로만 길을 찾긴 힘들어 'GO 평창' 애플리케이션은 필수다. 물론 어플이 더 친절하게 안내한다는 전제 하에.


어렵사리 도착한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은 밖에서 봐도 정말 거대했다. 지붕이 없어 개폐회식 때 추위를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도 많지만 어쩌겠는가. 돔 형식으로 만들면 다신 사용하지 않을 경기장에 수많은 세금을 쏟아부는 격인 걸. 지금으로선 현장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최대한 지원해주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바깥에서 본 경기장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동안 다양한 야구장과 축구장, 실내체육관을 다녔지만 손에 꼽을 정도로 예뻤다. 어쩌면 강원도의 맑은 하늘과 어우러져서 그래 보였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경기장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올림픽 플라자로 들어서자 슈퍼 스토어가 눈에 띄었다. 사실 들어서기 전부터 밖에서 봤을 때에도 잘 보였다. 다양한 굿즈를 판매할 텐데 이번 올림픽의 성패와는 별개로 성공적인 수익이 기대된다. 마스코트 IP가 국내에 잘 정착했고 해외 여행객들에게도 캐릭터는 친숙하게 다가갔다. 다만 서울역의 스토어에는 상품 종류가 다양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큰 규모로 실용적인 물품을 판매한다면 개인적으로는 평창 롱패딩과 같이 인기를 얻을 거라 본다.


한편 메달 플라자에선 시상식 리허설이 진행 중이었다. 오후가 되면서 날이 쌀쌀해졌지만 한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이룬 그룹은 다양한 리액션으로 즐기면서 추위를 잊었다. 올림픽 플라자에는 여러 예술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출입이 제한돼 있어 한적했지만 개막 이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플라자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그려졌다.


교육까지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셔틀 버스는 찾긴 어려워도 시간은 정말 잘 맞췄다. 단 1분이라도 늦는 일이 없었고 기사님들도 안전하게 운전해서 편안하게 승차했다. 기사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내가 본 기사님들은 캐리어나 화물을 넣고 빼는 것도 도와주시고 외국인에게도 짧은 영어로나마 친절하게 대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정말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앞서 올림픽 플라자에 도착했을 때 기사님이 너무 친절해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더니 크게 웃어주셨다. 추운 날씨와 부실한 지원으로 말도 많지만, 서로간의 인사 한 마디가 많은 힘이 되고 더 좋은 대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