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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여행/여행수첩

일 주일의 경기장 투어를 구상하며

7월 14일부터 7월 20일까지 경상도를 중심으로 경기장 투어를 갈 예정이다. 경기장 투어라는 구상을 하게 된 것은 사실 3년도 더 이전에 블로그를 기획하면서부터 생각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계기에서 즉흥적으로 시작되었다. 정확히 1주일 전, 계절학기로 듣는 <빅데이터와 스포츠산업>이라는 수업에서 한 조의 발표 주제가 내일로였다. 그 프레젠테이션을 보자마자 떠오른 게 '내일로로 경기장을 돌아다니자'였다. 그리고 집에 가자마자 프로야구와 K리그 클래식, 챌린지의 일정을 찾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은 없었다. 다음날인 목요일, 프로야구 올스타전 예매 시간이 다가오자 수업은 뒷전이었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구매했다. 올스타전은 아니고 올스타 프라이데이 티켓. 3년 전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의 올스타전이 크게 인상적이지도 않았고 이번 여행의 테마가 경기장이기 때문에 프라이데이가 더 만족스러웠다. 경기장 곳곳을 찍기 위해 좋은 자리를 구매하기에는 올스타전보다 더 낫다는 판단이었다. 만 오천 원에 VIP석을 경험할 날이 앞으로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됐다.

가장 먼저 잡은 포인트는 역시 동선이었다. 일 주일 간 많은 경기장을 찍기 위해서는 필수 고려 요소. 두 번째 포인트는 다양한 경기장이었다. 종목에 구애받지 않고 갈 만한 곳을 검색했다. 핸드볼경기장과 같은 실내 경기장도 찾아보았으나 이 시기에 열리는 경기가 없어 야구장과 축구장만 선정했다. 세 번째 포인트는 정보가 적은 경기장이었다.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지는 곳에 반해 사진 한 장 구하기도 어려운 곳이 주요 목표였다. 이 시기에 여행 계획을 잡은 나는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일 년에 6회 남짓 열리는 제2구장 경기가 여행 기간 동안 두 차례도 열리기 때문이다(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이 점은 여행 준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울산 문수야구장과 청주야구장을 취재하기에 최적의 일정이다.

170714-170720 경기장 투어 일정 지도


출발은 14일 금요일로 잡았다. 전날은 기말고사이기도 하고 경기 일정도 맞지 않는다. 금요일 올스타 프라이데이를 시작으로 토요일, 일요일, 수요일은 K리그가 열리기에 축구장으로, 화요일, 목요일은 야구장으로 가기로 정했다. 일정이 맞다면 K리그 챌린지를 월요일에 볼 생각이었으나 안산에서 한 경기밖에 열리지 않아 다른 볼거리를 찾기로 했다. 다행히도 15일, 16일 양일간 경상도에서 많은 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토요일엔 울산과 포항에서, 일요일엔 상주에서 경기가 있다. 일요일은 한 경기 뿐이기도 하고 전북이 원정팀이어서 바로 확정지었다. 토요일은 포항과 수원이 맞붙는 경기와 울산과 광주가 만나는 경기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앞 경기는 수원 팬이기도 하고 중위권 싸움이 치열한 두 팀이라서 매치업이 좋았지만 이미 두 차례나 다녀와본 포항스틸야드였다. 뒷 경기는 현 3위 팀 울산과 최하위 팀 광주가 만나 경기에선 큰 기대가 되지 않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문수축구경기장이었다. 이 고민은 의외로 엉뚱한 곳에서 해결됐다. 이후의 일정을 잡던 중 울산을 가게 될 일이 있어서 결국 포항 경기를 선택했다. 수요일의 경기는 별다른 옵션이 없어 대구에서 열리는 대구와 울산의 경기로 쉽게 정해졌다.

남은 건 화요일과 목요일에 어디에서 야구를 보는가였다. 3일간 한 번의 시리즈를 치르는 야구 특성상 경기장이 멀리 있으면 여행을 길게 가는 메리트가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지방 경기가 2개 열릴 예정이다. 18일부터 20일까지 경기가 펼쳐지는 구장은 잠실, 고척, 문학, 청주, 울산이다. 앞의 세 구장은 모두 수도권에 있지만, 뒤의 두 구장이 나를 끌어당겼다. 사실 가장 빠르게 변화를 선도했던 한화생명이글스파크나 부산 야구의 성지 사직 구장을 가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이 두 구장의 모습을 담아내는 게 지금으로서는 더 뜻깊게 느껴졌다. 당연히 이틀의 일정 동안 하루씩 보는 걸로 타협했다. 목요일을 끝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올 예정이므로 20일에 청주에서, 18일에 울산에서 사진을 찍을 것이다. 이렇게 경기 일정을 짜고 경기 외의 시간은 지역별 대학교 탐방을 하며 캠퍼스의 모습을 담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여행의 발단이 내일로였고 경기 일정도 이에 맞춰 계획했다. 하지만 정확한 예산과 경로를 짜기 위해 노선을 찾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전국을 도는 게 아니라 경상도 중심으로 머무르기 때문에 내일로 효용이 크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고속열차였다. 모든 곳을 무궁화호와 새마을호로 다닐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포항과 울산에는 KTX나 SRT만 다니고 있다. 7만원의 내일로 외에 4만원의 추가 비용이 늘어나니 예산이 크게 초과됐다. 그리고 일요일까지 3일 여행을 갈 지까지 고민했다. 단 하나, 울산과 청주에서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의 모습을 찍고 싶다는 생각 아래 그쪽으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결국 남들 다 하는 내일로가 아닌 버스로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께는 이미 계획까지 다 짜놓고선 말씀드렸다. 사실상 통보나 다름없었으나 믿어주시는 만큼 더 보람 있고 앞으로의 내 이상에 발판이 되는 여행으로 만들 것이다. 물론 이번 여행은 혼자 간다. 역시 친한 친구들은 여행 얘기를 듣자마자 미쳤다는 반응. 나처럼 스포츠를 좋아하는 지인을 꼬드기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지만 6일 동안 경기장만 주구장창 다니는 건 내가 봐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아서 얘기하지 않았다. 준비물은 옷과 카메라. 잘 할 수 있을 지는 가보기 전이라 모르겠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볼 것이다. 목표는 경기장 좌석부터 매점, 전광판까지 하나 하나 다 찍는 것. 그리고 360도 카메라나 드론보다 더 생동감 있게 경기장 모습 전달하기.